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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정보

세계유산 창덕궁, 내가 사랑하는 서울의 궁궐 (4. 희정당~대조전)

by 오메가데우스 2023. 3. 3.

재작년 가을, 홀린듯이 찍어본 창덕궁의 단풍

오늘은 궁궐 내 왕실의 생활공간에 해당하는 '내전' 이야기를 해보려고 한다.

앞 내용은 1~3편을 참고!!

 

세계유산 창덕궁, 내가 사랑하는 서울의 궁궐 (1. 돈화문~금천교)

 

세계유산 창덕궁, 내가 사랑하는 서울의 궁궐 (1. 돈화문~금천교)

현재 서울에는 조선시대의 궁궐이 문화재로 남아있는데 궁궐이라는 것에 대해 간단히 설명해 보자면 '궁'이라는 말과 '궐'이라는 말이 합쳐진 단어가 바로 "궁궐"이 되는 것이다. 먼저 '궁'이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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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유산 창덕궁, 내가 사랑하는 서울의 궁궐 (2. 진선문~인정문)

 

세계유산 창덕궁, 내가 사랑하는 서울의 궁궐 (2. 진선문~인정문)

처음 블로그를 시작하면서 글을 꾸준히 잘 올릴 수 있을까 사실 걱정이 많이 앞섰다. 그런데 의외로 글을 남기는 게 이렇게 재미있을 줄은 정말 생각지도 못했다. 더욱 부지런히 올려볼 생각! 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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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유산 창덕궁, 내가 사랑하는 서울의 궁궐 (3. 인정전~선정전)

 

세계유산 창덕궁, 내가 사랑하는 서울의 궁궐 (3. 인정전~선정전)

오늘은 창덕궁 세 번째 이야기다. 1,2편을 보고 오면 궁궐 출입문부터 들어올 수 있음! 세계유산 창덕궁, 내가 사랑하는 서울의 궁궐 (1. 돈화문~금천교) 세계유산 창덕궁, 내가 사랑하는 서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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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번째 이야기, 희정당부터 대조전까지

 

7. 또 다른 침전의 흔적, 희정당

 

 희정당은 '침전'으로 왕이 머무는 처소라고 할 수 있다. "희정"이라는 이름의 뜻은 '정치를 밝힌다.', '정치를 빛낸다.'라는 의미를 담고 있으며 처음에는 '숭문당(崇文堂)'으로 부르다가 연산군 때에 희정당으로 고쳐 불렀다. 희정당은 본래 침전의 용도로 지어졌던 공간인데 편전의 용도로 많이 활용된 것으로 추측되며, 1917년 왕비의 처소인 대조전 온돌에서 시작된 불이 내전 영역으로 크게 번지면서 내전 영역 전반이 전소되고 1920년 재건하게 된다. 이때부터 확실히 침전보다는 편전의 용도로 더 많이 활용되게 되며 당시 재건한 모습이 지금까지 이어져오고 있다.

 희정당은 재건 당시 새 목재가 아닌 다른 건물의 목재를 가지고 짓게 되었는데 바로 경복궁의 침전인 '강녕전'을 헐어다가 복원하게 된다. 현재 희정당 팔작지붕 양쪽 가운데 '강(康)'자와 '녕(寧)'자가 새겨져 있는데 이것으로 현재 희정당이 강녕전의 목재로 지어졌다는 것을 알 수 있고, 희정당이 강녕전의 목재로 재건되면서 본래의 모습보다 규모가 크게 확대되는데 본래 희정당은 정면 5칸, 측면 3칸의 전각이었는데 강녕전은 정면 11칸, 측면 5칸으로 훨씬 규모가 큰 전각이었기 때문에 희정당이 다시 지어지면서 앞 뒤, 양 옆으로 전각과 전각 사이의 공간이 많이 좁아지지 않았을까 추측해 본다.

 또한 내부 구조는 욕실, 화장실, 회의실 등 여러개의 방이 갖춰져 있는 서양식의 모습을 하고 있으며 중앙 대청의 안쪽으로 양 방향 벽에는 <총석정절경도>, <금강산만물초승경도>라는 작품이 걸려있고, 외부 모습은 전통 방식이지만 마치 호텔 로비인 듯 가운데 돌출현관이 나와있어 이쪽으로 당시 순종의 어차가 진입했다.

 

8. 궁궐 내전의 중심, 대조전

 

 대조전은 왕비의 처소로 "대조"라는 이름의 뜻은 '큰 대(大)'자와 '지을 조(造)'자를 써서 '크게 짓는다.', '크게 만든다.'라는 의미를 담고 있으며 말 그대로 왕비의 숙명이었던 왕세자 생산의 의미를 담고 있다.

 왕비의 처소는 사실 우리에게는 '중궁전'이라는 명칭으로 더 익숙할 수 있는데, 중궁이라는 뜻이 소제목 그대로 궁궐 내전의 중심이 되는 곳이라는 뜻이 된다. 

 대조전 역시 1917년 내전 화재로 인하여 소실되었다가 1920년 경복궁의 중궁전인 '교태전'을 헐어다가 재건하게 되면서 구조가 바뀌게 되며, 가운데 대청마루를 중심으로 동온돌과 서온돌로 나뉘어 있다.

 대조전 동온돌 오른편에 연결된 부속전각에는 '흥복헌'이라는 현판이 걸려있으며, 이곳이 굉장히 아픈 역사의 현장이 되는 곳인데 바로 이곳에서 1910년 8월 22일 대한제국의 마지막 어전회의가 열리게 되고 한일강제병합이 맺어지게 된다. 이후 일주일 뒤인 8월 29일 조약 사실이 공포되며 이를 "경술국치"라고 한다. 

 우리가 알고 있는 조선시대 유명한 기록물 '조선왕조실록'은 태조실록부터 출발해서 순종실록까지 존재하는데 이 조선왕조실록의 마지막 날짜가 1910년 8월 29일, 그 내용은 "일본국 황제에게 한국 통치권을 양보하다."이다.

 내가 처음 자원봉사 해설을 준비하며 궁궐에 대해 공부하기 시작했을 당시, 이 내용을 접했을 때 비록 일제강점기 당시의 기록은 신뢰성이 떨어진다고는 하지만 어쨌든 조선왕조실록이 나라를 빼앗기고 끝이 났었구나 싶어 참 마음이 아팠다. 보통 8월 15일은 어떤 날인지 누구나 다 알고 있을 것이고, 심지어 공휴일이기까지 하니 모를 수가 없다. 우리가 나라를 되찾은 날짜만 기억하는 것이 아니라 흥복헌을 보며 나라를 빼앗긴 날짜도 기억한다면 훨씬 더 의미 있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여기까지가 생활공간인 '내전'이며, 이후에는 세자의 영역으로 넘어가 보자!

 

다섯 번째 편은 이곳! ↓↓

세계유산 창덕궁, 내가 사랑하는 서울의 궁궐 (5. 성정각~낙선재)

 

세계유산 창덕궁, 내가 사랑하는 서울의 궁궐 (5. 성정각~낙선재)

평소 이런저런 이유로 창덕궁에 자주 가는 편인데 갈 때마다 매번 다른 모습을 하고 있는 듯한 느낌을 받게 된다. 나에게 있어 창덕궁은 365개의 계절을 가진 볼수록 설레는 공간인 것 같다. 벌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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