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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정보

세계유산 창덕궁, 내가 사랑하는 서울의 궁궐 (1. 돈화문~금천교)

by 오메가데우스 2023. 2. 27.

창덕궁과 창경궁을 그린 동궐도 (고려대학교 박물관 소장본)

 현재 서울에는 조선시대의 궁궐이 문화재로 남아있는데 궁궐이라는 것에 대해 간단히 설명해 보자면 '궁'이라는 말과 '궐'이라는 말이 합쳐진 단어가 바로 "궁궐"이 되는 것이다.

먼저 '궁'이란 왕과 왕실가족들이 살면서 신하들과 정무도 보고 전반적인 생활을 했던 생활공간이며, '궐'이란 그 '궁'을 둘러싸고 지키는 궁성, 성문 등 모든 수비시설을 일컫는 말이 '궐'이다. 이 둘을 합쳐 "궁궐"이라고 부르는 것이고 이러한 궁궐이 서울에는 총 5개가 있다.

 

 조선이라는 나라가 세워지면서 법궁으로 만들어진 경복궁과 그로부터 10년 뒤 만들어진 창덕궁, 세 분의 대비를 모시기 위해 만들어진 창경궁, 현재 서울시청 앞에 남아있는 대한제국의 황궁으로 쓰인 덕수궁과 서울역사박물관 옆에 자리를 지키고 있는 조선 후기 이궁이었던 경희궁까지 총 5개가 남아있고, 나는 이 중에서 창덕궁에 대해 소개해보려고 한다.

 

 창덕궁은 조선의 법궁인 경복궁의 이궁으로 태종 5년인 1405년에 지어졌다. 조선시대 법궁이었던 경복궁과는 다르게 건물들이 지형을 따라서 자연과 조화를 이루며 자유롭게 흩어져 지어진 것이 특징이고, 창덕궁과 바로 옆인 창경궁까지 하나의 궐로 이루어져 동쪽에 있는 궁궐이라 해서 '동궐'이라고 불리기도 했다.

 1592년 임진왜란이 발발하고 당시에 있던 경복궁, 창경궁과 함께 창덕궁도 완전히 소실되었다가 전쟁이 끝난 뒤 선조와 광해군 때에 걸쳐 경복궁보다 먼저 중건되는데, 권위가 더 높은 법궁보다도 이궁이 먼저 중건된 이유는 여러 가지 이유와 설이 있지만 완벽한 정설로 알려진 내용은 없다. 가장 현실적인 이유 딱 한 가지만 꼽자면 아무래도 전쟁이 끝난 직후였기 때문에 규모가 큰 법궁을 중건하기에는 분명 재정적인 압박이 가장 크지 않았을까 하는 추측을 해볼 수 있겠다.

 이후 고종 때 경복궁을 중건할 때까지 약 260여 년간 경복궁은 빈 터로 남아있게 되고 그 기간 동안 창덕궁이 조선의 법궁 역할을 하게 되면서 조선의 궁궐로서는 가장 오랫동안 사용된 궁궐이며 현재 서울의 5대 궁궐 중에서 원형이 가장 잘 보존되어 있다. 이 외에도 여러 가지 역사적 가치를 인정받아 1997년에 5대 궁궐 중 유일하게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었다.

 

첫 번째 이야기, 돈화문부터 금천교까지

 

1. 권위있는 궁궐의 정문, 돈화문

 

 돈화문은 창덕궁의 정문으로 문의 이름인 "돈화"는 '임금이 큰 덕을 베풀어 백성들을 돈독하게 하다.'라는 정치적 이상을 담고 있는 이름이다.

 현재의 돈화문은 임진왜란이 일어나면서 화재로 소실되었다가 선조 40년인 1607년에 복구를 시작해 2년 후인 광해군 원년인1609년에 완공되어 지금 현재까지 이어져 오고 있는 현존하는 궁궐의 정문 중 가장 오래된 정문이다.

 구조는 2층으로 되어있고, 2층에는 조선시대 당시 북과 종 등을 걸어 인정과 파루, 즉 통행금지와 해제 시간을 알리는 역할을 했으며, 세 칸의 문 중 가운데는 임금이 다니는 어문, 양 옆은 정 3품 당상관 이상의 고위관직의 신하들만이 다니는 문으로 사용했는데 사실상 돈화문은 주로 왕의 행차나 의례 등에 사용되어 거의 닫혀있다시피 했기 때문에 궁궐 내 일반관리들의 출입은 서쪽의 금호문을 이용하여 출입했다.

 

2. 허락된 자만이 건널수 있었던, 금천과 금천교

 

 창덕궁 뿐만 아니라 모든 궁궐은 궁궐조성의 기본원칙이 되는 궁궐 앞 물길과 그 물길을 건너는 돌다리가 형성되어 있는데 이 궁궐 앞 물길은 아무나 함부로 건너지 못하는 물길이라고 하여 금할 금(禁) 자를 써서 '금천'이라고 부른다.

 이 금천을 건너는 돌다리를 금천교라고 일컫는데 창덕궁의 금천교는 태종 11년인 1411년에 만들어져 지금 현재까지 그대로 이어져 오고 있는 5대 궁궐의 금천교 중 가장 오래되었다. 창덕궁의 금천교뿐만 아니라 각 궁궐의 금천교는 각각 고유의 이름이 있는데 경복궁의 금천교는 '영제교', 창경궁의 금천교는 '옥천교'라고 하며 창덕궁의 경우 금천에 흐르는 물이 비단결처럼 곱고 아름답다고 하여 비단 금(錦) 자를 써서 '금천교'라고 불린다.

 또한 금천을 경계로 삼아 궁궐 안과 밖을 구분했기 때문에 이 금천교를 건너야만 비로소 임금의 공간인 궁궐 안으로 들어간다고 볼 수 있다.

 

이제 본격적으로 궁궐 안으로 들어가보자!

 

두 번째 편은 이곳! ↓↓

세계유산 창덕궁, 내가 사랑하는 서울의 궁궐 (2. 진선문~인정문)

 

세계유산 창덕궁, 내가 사랑하는 서울의 궁궐 (2. 진선문~인정문)

처음 블로그를 시작하면서 글을 꾸준히 잘 올릴 수 있을까 사실 걱정이 많이 앞섰다. 그런데 의외로 글을 남기는 게 이렇게 재미있을 줄은 정말 생각지도 못했다. 더욱 부지런히 올려볼 생각! 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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